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동지(同志)의 슬픔과 달콤한 인생.

by G_Gatsby 2009. 11. 10.


오늘은 루저(loser)라는 말이 세상을 휩쓰는것 같습니다.
어느 방송에 나온 대학생이 키가 작은 남자를 루저로 지칭하면서 구체적인 기준을 180Cm로 제시했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 학생이 말하는 루저의 심오한 의미를 알수 없지만, 자기만의 기준은 명확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평생 위너(Winner)로 살아본 적도 없고, 앞으로 위너가 될 가망성이 전혀 없는 루저의 인생을 살고 있군요. 하지만 그 학생의 지칭어 처럼 실패한 사람으로 세상을 살진 않은것 같습니다.

동지(同志)의 슬픔.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이던 강금원씨의 눈물을 기억합니다.
그가 운영하던 회사가 요즘 많이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크지는 않지만 탄탄하던 회사가 어느 순간부터 거래처가 끊기고 운영이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어쩌면 예고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자던 동지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인간적으로 좋아하며 그 뜻을 따랐던 동지들은 하나둘씩 사라져갔습니다. 그의 뜻에 환호하던 우리들도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씩 열정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의지가 깊은 사람의 뜻을 꺽고, 뜻을 같이 했던 사람들을 갈라놓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세상을 지배했던 독재자는 반항하는 사람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치졸한 방법을 썼습니다. 특정한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가족과 동지의 목숨을 위협했고, 전향한 자를 이용해 선전을 했으며, 연좌제를 통해서 평생토록 원망 속에서 살게끔 했습니다. 우리의 역사에도 이러한 슬픔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동지의 아픔은 자신의 아픔보다 더 아픕니다. 뜻과 의지가 확고한 사람일수록 이러한 고통은 더욱더 크게만 느껴집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동지의 슬픔은, 이렇게 우리들 곁에 머물러 아직도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다.

'갈곳을 찾아 떠나는 새는 슬퍼도 날개짓을 멈추지않는다.'

강금원씨가 평생을 일구었던 작은 기업은 동지와 함께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은 권력에 대한 보복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법이 평등하다면, 세상이 공평하다면, 몇 년후 또다른 사람이 동지와 운명을 함께 해야 하겠죠. 하지만 우리의 짧은 역사속에는, 기득권과 함께 걸어간 사람들의 슬픔은 보이질 않습니다. 냄새가 나고 구더기가 나오지만, 썩지는 않았다는 것이 가진자를 위한 법리적 해석인것 같습니다.


달콤한 인생.

키가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어느 여학생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소신있는 의견이고,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의 가치속에서 나온 말이라면 크게 신경쓸일은 아닌것 같습니다. 자신이 꿈꾸는 달콤한 인생에서 자신만이 가지는 상대적인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자신의 의견을 소신있게 발언할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다만 자신의 의견이 사회적 시선과 충돌할때 문제가 발생하는것 같습니다. 늘 소신있는 발언은,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아직도 모든게 노무현 때문이라며 거품을 물고 있는 노욕의 김동길씨도 있습니다. 세상을 획일적인 가치관으로 바라보며 구구절절 헛소리를 해대는 조갑제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발언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대중의 상식과 사회적, 도덕적 가치에서 벗어날 때 비판과 비난을 받습니다.

누구나 달콤한 인생을 자신만의 잣대로 만들어 갈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한다면 무엇이 문제인지는 한번쯤 생각해 봐야할것 같습니다. 평생을 권력의 테두리안에서 떨어진 빵부스러기만 주워먹으며, 기자네 교수네 하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처럼 추하게 늙어가기 전에 사회적 가치와 책임의식을 가져야할것 같습니다.

동지를 잃는 슬픔없이, 각자 달콤한 인생을 자유롭게 만드는 세상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부와 권력에 세습되는 계급사회는 지난 수백년의 역사속에서 늘 되풀이 되었던 인간사회의 한계였습니다.
 
키가 작다는것,  돈이 없다는 것은 상대적인 가치에 불과합니다. 서로를 비교 하고 평가를 하기 시작하면 계급과 세습의 폐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언젠가 한계점을 넘어서는 그날이 오겠지요. 언제나 절대적인 가치는 상대적인 가치에 우월한 힘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때를 기다리며 달콤한 희망을 꿈꾸어야 할것 같습니다. 그때는 모두가 인생의 위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