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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여백과 울림의 노래, 그들을 기억하다.

by G_Gatsby 2010. 1. 21.

쌀쌀해진 거리를 오늘도 걷습니다.
비가 내리고 난뒤의 날씨가 다시 사람을 움츠리게 만듭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멍하니 거리를 바라봅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입니다.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심의 풍경속에서 정해진 좁은 공간으로 이리저리 어지럽게 움직입니다.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립니다. 꽤 귀에 익숙한 음악입니다. 나에게 '서른'의 의미를 안겨준 노래 였습니다.
김광석'서른즈음에'가 차분하게 흘러 나옵니다.

# 1

얼마전 '내사랑 내곁에'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는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하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죠. 이 영화의 제목을 보면 잊지 않고 떠오르는 가수가 있습니다. 영화의 말미에 그의 음성이 담긴 노래가 흘러나오더군요.


아마도 김현식의 노래를 즐겨 들었던 사람이라면 그의 노래가 담긴 테이프나 CD나 LP를 갖고 있을겁니다. 그가 아닌 어떤 가수가 그의 노래를 부르더라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의 노래에는 특별한 '울림'이 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정확한 기억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가 죽기전에 특별한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오선지에 곡을 그릴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저 입에서 흥얼거리며 만들어진 노래를 누군가가 오선지에 그려넣어준 것이라고 말이죠. 그는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에서 흥얼거리며 나오는 음율로 세상을 표현했습니다.

그의 노래에는 늘 외로움고독이 담겨 있습니다. 이루어진 사랑에 행복해 하는 노래보다는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의 노래에서 나오는 '울림'은 고독하고 외로운 우리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기억속에서 잊혀졌다가 어느 순간, 그의 노래는 또다른 '울림'으로 다가 옵니다. 인간은 한없이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라는 그의 말이 맞는것 같습니다.

# 2

돌이켜 보면 '서른'의 의미는 큰 것이었습니다.
아이에서 청년으로, 그리고 인생의 깊이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하는 나이가 된 것이죠. 포기할 것은 포기 하고 타협할 것은 타협하게 되는 그런 나이였던것 같습니다.

김광석의 노래에는 늘 '여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꾸미지 않은 순수한 모습, 포근한 인상과 깊이 있는 말들. 그러면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는 한없이 외로워 보였습니다.

삶의 이유를 늘 궁금해 했던 그의 노래는 인간이 시간과 함께 살면서 느끼는 아픔과 고통, 그리고 찾아야 하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삶을 고백하고, 삶을 중얼거리면서도 무언가 듣는 이로 하여금 채워넣어야 하는 해답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의 마지막 모습처럼 해답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죠.

그의 '여백'은 시간이 지나도 채워지지 않는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노래에 나오는 수많은 고민들을 여전히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의 여유는 인생의 남겨진 공간이지만, 그 공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스스로 늙어가고 맙니다. '여백'의 가수가 남겨놓은 노랫말 속에는 그러한 아픔이 함께 묻어 있습니다.



표정없는 얼굴로 바쁜 걸음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지친 삶의 내면에는 '울림'과 '여백'을 모두 갖고 있을 테지요. 그래서 때로는 힘든 삶에 울고 싶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변함없는 삶에 싫증이 나기도 하고, 애써 자신의 감정을 감추어야 할때도 있을 겁니다.

집으로 돌아와 오래된 영상을 찾아서 멍하니 쳐다 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해주는 가사에 취해 봅니다. 인생을 노래하던 두 가수는 사라졌지만 그들의 '울림'과 '여백'은 아직도 여전한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여전한것 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