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소식도 없이 내립니다.
단단하던 눈더미가 소리없이 녹아 내립니다. 매일 삽으로 눈을 내리 찍던 경비 아저씨의 얼굴에 생기가 돕니다. 동장군이 안드로메다로 먼 길을 떠나고 나니 세상이 포근해 집니다. 불필요한 삽질이 필요없는 세상, 이 것이야 말로 우리가 진정 바라는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풍경 # 1
무심코 열어본 냉장고에 옛날 소세지가 눈에 보입니다.
아마도 오래전 동네 마트에서 사 놓은 모양입니다. 라면을 끓이는 것도 저에겐 요리에 속할 정도로 음식 만드는 재주가 없습니다. 그래서 쉽게 해먹을수 있는 음식을 만들거나 마트에서 구매를 합니다. 옛날 소세지는 마트에서 무얼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사놓은 모양입니다.
아마 저와 나이가 비슷하신 분들은 옛날 소세지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겁니다. 요즘은 햄이나 수제 소세지를 즐겨 먹습니다만, 어릴때에는 옛날 소세지에 광분할 정도로 고급 음식이었습니다. 얄팍하고 쉽게 부서지는 소세지를 어머니는 정성스럽게 요리를 해서 도시락 반찬으로 주시곤 했습니다. 계란이 덮힌 밥과 주황색 노란 소세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합니다. 아마도 어머니의 사랑과 애정이 담긴 거라서 그랬을 겁니다.
커다란 칼로 소세지를 잘게 잘라 후라이팬이 넣습니다. 계란을 살짝 부칠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만둡니다. 오늘은 그냥 옛날에 먹던 소세지의 맛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기름에 춤을 추는 소세지를 보며 입맛을 다십니다. 소세지가 익을때까지 조바심을 냅니다. 비오는날 청승을 떠는 독거인의 애틋한 모습입니다.
'우리 서로 사랑하게 해주세요..제발'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습니다. MP3를 틀었더니 황병기씨의 '미궁' 이 흘러나옵니다. 귀찮아서 그냥 들으며 먹습니다. 귀신을 부르는 공포감 보다는 언릉 먹고 싶다는 식탐이 더 강합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소세지가 맛이없습니다. 원래 싱겁게 먹긴 하지만, 예전처럼 고소한 맛이 없습니다. 요리 솜씨가 없긴 하지만 후라이팬에 적당히 튀길 정도는 됩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맛이 없습니다.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날, 찢어지는 가야금 장단에 맞추어 꾸역꾸역 밥을 다 먹었습니다. 포만감과 공포감이 함께 밀려옵니다.
설겆이를 하려다 무심코 쏘세지의 포장지를 봅니다. 유통기한이 20일이 지났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걸 산게 한달전인것 같습니다. 배속에서 나는 소리에 잠시 집중해 봅니다. 설마 죽기야 하겠습니까만, 그래도 찝찝합니다. 다행히 별 탈은 없는것 같습니다. 오랜시간 담배와 커피로 단련한 위장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한 모양입니다.
느낌 # 1
M. 스캇 펙의 고전 '아직도 가야할 길'에 보면 사랑에 대한 정의가 나옵니다.
' 사랑은 자기 자신이나 또는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첫눈에 반한 이성에 대한 사랑은 결코 사랑이 될수 없다고 합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은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호기심이라는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어서, 그 기간이 지나면 처음에 가졌던 감정은 대부분 폐기처분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꿈꾸는 이성적인 사랑은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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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영원함을 꿈꾸지만 인간의 유통기한을 가진 적절한 사랑에 머무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특별한 깨달음이 있는 자만이 영원한 사랑을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가 그러한 사랑일겁니다. 결코 죽지 않고 남아 사람들에게 이어지는 그런 사랑 말이죠. 그래서 정신적 성장의 마지막에 위치한 깨달음이 바로 '사랑'인지도 모릅니다.
어릴적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음식의 맛도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식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만들어 낸 소박한 정성입니다. 그 맛을 먹고 기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 어디에도 그 맛을 찾을수 없는것 같습니다. 세상의 어떤 요리사도 그 기쁨을 재현할수는 없겠죠.
우리 주위에도 수많은 사랑이 있습니다.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도 있고, 조건없는 가족간의 사랑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있고, 절에서는 부처님의 자비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어디에서나 수많은 사랑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사랑의 의미를 이해하고 확대해 나가려는 자신의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불완전 하지만 영원함을 꿈꾸는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할것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애인과 배우자, 부모와 형제들은 모두 유통기한이 있는 존재입니다. 막연하게 투정하며 미워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사랑을 추구하는 자는 지혜롭고 사랑을 하는 자는 용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M.스캇 펙이 말한 사랑의 의미는,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닌 몸과 가슴으로 느끼고 실천하는 사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자의 투박한 손길로는 도저히 맛있는 소세지를 만들순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유통기한이 지났으니 말이죠. 어쩐지 먹는 동안 특유의 야들야들한 맛은 없었습니다. 그저 투박한 명태살을 먹는 느낌이었습니다. 냉장고에 있던 거라 특별히 문제가 생기진 않을것 같습니다. 먹고 싶던 소세지를 먹었지만 아직도 어릴적 먹던 그 맛이 그립습니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도 커가는것 같습니다. 이번 명절땐, 어머니에게 응석을 좀 부려야 할것 같습니다. 유통기한이 없는 사랑을 느끼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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