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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스님의 은혜와 이별의 아픔

by G_Gatsby 2010. 3. 12.

어제 오후에 법정 스님이 입적을 하셨습니다.
한참 밥벌이에 집중하며 일을 하고 있는데 인터넷 속보로 뜨더군요. 얼마전 몸이 안좋아 입원하셨을 때부터 오래 계시지 못하리라 생각했습니다. 폐암으로 고통을 받고 계셨는데 그게 더 큰 고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최근에 샀던 스님의 책을 한번 쓰다듬어 봅니다.
몸이 아픈 와중에도 법회에 나와서 하셨던 말씀을 수록한 책이죠. 법문에 담긴 내용을 읽으면서 혼란한 마음을 다스렸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에 인색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세상을 보듬어 바라보던 시선은 결코 인색하지 않으셨습니다. 저에겐 늘 풍족한 마음을 안겨다 주셨죠. 책을 보고 있자니 스님의 숨결이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 스님의 은혜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읽고, 가장 많이 샀던 책이 법정 스님의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무소유'만 하더라도 수십권을 사고 나눠주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큼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 싶은 소중한 책이었던 것이죠. 비록 스님의 말씀처럼 버리고 내려놓으며 살진 못했지만 말이죠.

요즘은 우리 사회에서 존경과 사랑을 함께 받는 사람들이 참 드뭅니다.
물질주의와 경쟁사회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인정을 받지만, 그들이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 되진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많이 가진자가 부러움이 대상이 되긴 하겠죠. 하지만 그것이 전부 입니다. 결코 그들이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 주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존경과 사랑으로 바라보진 않습니다.

존경할만한 사람이 별로 없는 이유는 우리의 역사가 말해주기도 합니다. 
진실이 인정받지 못한 사회에서는 진실을 말해야 하는 '존경하는 어른'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일본에 저항했던 진실은 대부분 죽음을 당하고, 친일한 자들이 권력을 얻었습니다. 군사독재에 항거하던 사람들은 핍박과 따돌림을 받고 군사독재에 순응했던 사람은 오늘날 까지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변절한 자들도 한자리를 차지했죠. 이렇게 '진실'을 외치던 사람들 보다는 강한자의 편에서 옷을 갈아 입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가장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진실'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그래서 혼란스럽기만 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법정스님 같은 분이 더욱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궁핍하고 가난한 우리의 마음속을 따뜻하게 채워주시기도 하셨죠. '욕심'과 '미련'의 내려놓음을 말씀하시며 직접 실천하는 모습속에서 우리는 '삶의 진실'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참 고마우신 분이죠.
인간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삶의 진리, 종교적 진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 이별의 아픔

가 나라의 곳간을 갉아 먹기 시작하니 나라의 소중한 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국보 1호가 불에 타 사라졌습니다. 아픈 사람의 손을 잡아 주시던 김수환 추기경도 돌아가셨구요, 우리나라 민주화의 상징인 김대중 대통령도 돌아가셨습니다. 그저 평범한 농부로 살기를 바랬던 노무현 대통령도 쥐에 물려 돌아가셨습니다. 이번에는 법정 스님마저 떠나시는군요.

가진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타이르는 비열한 사회 속에서 '인간'의 도리를 잃지 않으셨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마주하는 이별에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기만 합니다. 이제 소박하고 곤궁한 삶의 시간속에서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존경과 사랑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지금의 시간이 두렵기만 합니다. 이별은 이렇게 살아있는 사람에게 아픔을 안겨주는것 같습니다.

언젠가 스님의 법회에 꼭 한번 가보겠다고 마음을 먹은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스님의 책을 수십번 고쳐 읽고 난 뒤, 주체할수 없는 기쁨이 느껴지던 때였던것 같습니다. 그 때도 늙은 스님이었지요. 시간이 흘러 스스로의 나이듬은 깨달았지만 스님의 나이듬은 미쳐 생각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번도 직접 법회에 가질 못했죠. 바쁘다는 핑계만 댈줄 아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듣고 싶어도 영영 들을수 없게 되었네요.



이제 서점에서도 스님의 책은 보기가 힘들것 같습니다.
스스로 아무런 남김도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손때묻은 스님의 책이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오래오래 소중히 간직할것 같습니다.

참 슬픈 날입니다.
속세의 고단함을 모두 던져 버리시고 편히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이 던져주신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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