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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알을 깨고 나오다.

by G_Gatsby 2010. 3. 30.


세상이 참 시끄럽습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일어나서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외로움을 깨쳐 나오지 못한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시외버스가 추락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또 무슨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나라의 어른은 하나 둘씩 사라집니다.
우리 이웃이 흘리는 슬픈 눈물 뒤로 얼룩진 우리 시대의 주류들은 숨고,덮고,감추며 이리저리 용케 피해 다닙니다. 똥 누고 도망간 상수 녀석은 뻔뻔한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닙니다. 진실이 사라지고 있는 세상은 참 막막하고 어둡기만 합니다.

# 1

좁은 골목길을 아주머니 다섯 분이 가로 막고 천천히 걷습니다.
배가 살살 아파서 빠르게 걷던 독거인은 거대한 아주머니 장벽에 가로 막혀 마음이 급해집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크게 웃으며 길을 모두 차지하고 걷습니다. 비슷해 보이는 커다란 가방도 하나씩 팔에 들었습니다. 걸을 때마다 팔에 걸린 가방이 좌우로 흔들립니다.

오른쪽 빈틈을 공략해 치고 나가려니 키 큰 아주머니가 가로 막습니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나이든 아주머니가 가방으로 막습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닌데 타이밍이 절묘 합니다. 부끄럼 많은 독거인은 길좀 비켜달라는 말을 못해서 맘이 심란해 집니다.

아주머니 뒤에서 인기척을 내봅니다.
안경 쓴 아주머니가 뒤를 힐끔 보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가방을 힘주어 잡습니다. 난감해진 독거인은 허탈한 마음으로 뒤를 돌아 봅니다. 뒤에는 순찰을 돌던 ‘민중의 지팡이’ 한 분이 유심히 저를 쳐다봅니다. 살살 아파오던 배에서 보글보글 끓는 물소리가 들립니다.



모세의 기적은 그 때 일어났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으로 접어든 아이가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보고 클락션을 울려댑니다. 마치 거대한 바다가 갈라지는 것처럼 아주머니가 좌우로 일제히 비켜섭니다. 머리를 짧게 깍은 아이가 탄 자전거가 그 사이로 지나갑니다. 배를 움켜 쥐고 난감해 하던 독거인도 빛보다 빠른 속도로 재빨리 아주머니 장벽을 헤치고 나아 갑니다. 오백미터 남짓한 거리를 우샤인 볼트와 비슷한 속도로 달려 왔습니다.

# 2

얼마전 고대에 다니는 한 학생이 대자보를 통해서 자퇴 선언을 했습니다.
험난한 생존 경쟁을 당연시 하던 못된 사회에 던진 ‘화두’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음에도 순응하고 참고 살아야 했던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녀가 세상에 던진 질문과 선택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헤쳐 나오지 않으면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모진 세상에 대한 울분이었습니다.

스스로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숱한 고통이 있습니다.
알을 낳기 위한 산통이 있었겠지만, 그 알을 깨기 위한 스스로의 고통도 있습니다. 스스로 만족하며 단단한 알 속에서 바둥거리며 목숨을 연명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알을 깨는 수고로움을 멈추어선 안됩니다. 그저 살아 있음에 만족하기에는 우리의 청춘과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이죠. 누군가 알을 깨어주길 바라며 숨 죽이며 살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던진 여학생의 용기는 그래서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박노자 교수한겨레신문에서 고대 여학생의 대자보를 ‘동물농장에서의 탈출’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취업학원이 되어버린 대학을 동물농장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다수의 무산자들이 굶어죽지 않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우리 사회의 냉혹함을 이야기 했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는 학문의 전당은 ‘지식인’을 만들어 내는 곳이 아니라 ‘우월한 노동력’을 만들어 내는 공장과 다름없다고 말이죠.



우리 사회의 대부분이 취업현장에서 스스로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무산 노동자들입니다.
하지만 모두 스스로가 그러한 노동자임을 인정하기 싫어하죠. 그래서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일은 점점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인간의 가치’는 ‘경쟁’과 ‘자본주의’ 속에서 점차 그 본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아마 고대 여학생에게는 쉽지 않은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가진 것을 포기하고,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만큼 외로운 싸움은 없습니다. 하지만 보다 더 높은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는 그 여학생의 미래가 훨씬 더 밝고 아름답게 빛난다고 믿습니다. 알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통을 겪은 자만이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낄수 있으니까요.


 

빛의 속도로 달려와 거사를 치룬 독거인에게는 열살 먹은 꼬마 아이의 자전거가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습니다. 스스로 거대한 장벽을 헤쳐나갈 능력조차 없다는 것이 부끄럽기 까지 합니다. 긴장이 풀리고 난 뒤에 찾아오는 작은 만족감. 그것을 느끼며 오늘 하루도 조용히 보내 봅니다.



PS. 이 글을 마지막으로 ‘12시 5분전’의 이야기는 마무리 할까 합니다.
부족한 글솜씨에 불성실한 블로거로서 무언가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건방지고 가벼운 존재가 시끄럽고 날카로운 날림체가 아닌 존대어를 쓰며 글을 이어가는 것도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못다한 이야기가 많지만,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계속 미루어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동안 소소하고 푸념섞인 ‘12시 5분전’의 이야기에 정성스런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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