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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길을 걷다

할머니와 늙은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억

by G_Gatsby 2010. 7. 12.

어느 곳에는 물난리가 나고 또 어느 곳에는 하루종일 햇빛이 따갑습니다.
그리 넓지 않은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날씨 차이가 많이 나는게 조금은 신기 합니다. 휴가철이 다가오는가 봅니다. 여기 저기서 휴가에 대한 이야기가 꽃을 피웁니다. 주머니는 얇아 졌어도 멋진 휴가에 대한 소망은 커져만 갑니다. 일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휴식을 주고, 매일 반복되는 긴휴가에 힘들어 하던 사람들에게는 내일을 꿈꾸는 보람있는 휴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1 보이는 것

동네 골목에 작은 슈퍼마켓이 있습니다.
이름은 슈퍼마켓 이지만 물건 고르기도 버거울 정도로 작고 협소합니다. 그곳에는 나이든 할머니늙은개가 있습니다. 가끔 물건을 사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 서면 늙은 개가 힐끗 한번 쳐다보고 꼬리르 흔듭니다. 그러면 의자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고개를 내밀고 쳐다 봅니다. 매번 같은 풍경 입니다.

월드컵이 동네의 치킨 가게를 습격하던날 새벽에 편의점을 가기 위해서 밖을 나갔습니다. 가는 길에 작은 슈퍼마켓에 불이 켜져 있더군요.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들어갔습니다. 졸고 있던 늙은개가 고개를 내밀고 쳐다 보고 꼬리를 흔듭니다. 책상에 머리를 숙인 할머니는 그래도 고개를 들지 않습니다.

과자 몇개와 음료수를 고르고 계산대로 가자 늙은개가 갑자기 낑낑 거리기 시작합니다. 그제서야 할머니는 졸린 눈으로 쳐다봅니다. 밤에도 장사하냐고 묻는 말에 장사가 안되서 밤에 담배라도 팔아야 된다고 대답합니다. 낯선이가 가게 문을 나서자 늙은 개는 다시 고개를 떨굽니다. 슈퍼마켓을 밝히는 백열등의 불빛이 덥게 느껴집니다.


다음날 오후에도 슈퍼마켓의 풍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졸린눈의 늙은 개와 할머니의 모습이 유리문 너머로 얼핏 보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할인마트와 편의점이 참 많습니다. 몇발자국 걸어가면 편의점 간판이 보입니다. 할머니의 삶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 2 사라지는 것

대형 전자마트가 들어서자 옆 건물의 컴퓨터 가게가 점포세를 붙입니다.
재개발이 확정된 곳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부동산 소개 업소가 개업을 합니다.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용달 트럭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도로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 음식점과 점포들이 늘어 갑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은 스산한 풍경을 만듭니다.

할머니가 계시는 슈퍼마켓에서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대형 편의점이 오픈 준비를 합니다. 노란색 간판이 달리고 밝은 형광등이 설치가 되고 은행의 ATM기가 설치가 됩니다. 이 좁은 도로에 편의점과 슈퍼마켓이 몇개인지 모르겠습니다.

며칠이 지난후부터 할머니의 슈퍼마켓은 불이 꺼져 있습니다.
희미한 백열등으로 환하게 불을 밝히던 가게에는 초록색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습니다. 할머니의 모습도 늙은개의 모습도 더이상 볼수가 없습니다. 초라해 보이는 건물이 할머니의 얼굴에 그려있던 주름의 깊이만큼 스산하고 우울해 보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것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는것 같습니다. 비슷한 풍경인것 같지만 너무도 다른 풍경입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모습을 발전과 번영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아픈 모습이기도 합니다.

할머니가 지키고 있던 슈퍼마켓의 셔터앞에 점포세 라는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삶을 이어가기 위해 이곳에 희망을 심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또다른 좌절을 맛볼지도 모르죠. 하지만 더이상 할머니와 늙은개의 모습은 볼수 없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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