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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단상(段想)

7년전 실각한 아르헨 델라루아 정권을 아는가

by G_Gatsby 2008. 5. 18.


프레시안의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315> 2001 냄비시위와 2008 촛불집회의 기사인데, 읽어 볼만한 자료인것 같아서 가져왔다.

[출처: 프레시안 www.pressian.com ]


"우린 무얼 먹고 살란 말인가. 국민의 기본권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대통령은 물러나야 마땅하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시위대가 정권퇴진을 주장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와 외친 구호다. 얼핏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와 광우병의 위험을 경고하며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는 현재 한국의 모습이 연상되겠지만 이는 2001년 12월 아르헨티나의 얘기였다.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한국의 촛불시위를 보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났던 아르헨티나의 소위 '냄비시위'와 이로 인해 정권이 붕괴됐던 과거가 떠오르는 건 이 두 사건이 민생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또한 지금의 MB정권과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도 델라루아 정권이 꼭 닮은꼴이라는 점도 여간 예사롭지 않다.
 
수도권 시장 출신 대통령이라는 것, 보수우익을 표방하는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우선 똑같다. 또 MB는 7%의 경제성장과 교육정책의 개혁을 약속해 대통령이 됐고 델라루아는 5%의 성장과 교육개혁 그리고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세워 대권을 잡은 것도 일치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진보성향이 강한 페론당의 오랜 집권으로 노동자천국이라던 아르헨티나에서 대기업, 특히 외국계기업들의 요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노동법 개정을 추진해 노조와 대립각을 세운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도 약속이나 하듯 빼 닮았다.
 
  나아가 50%대를 오르내리던 지지도가 두세달 만에 20%대 초반으로 급락한 것도 신기할 정도로 동일하다. 친미 성향의 교수들과 경제학자들이 정부의 주요 포스트를 장악했다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이 두 정권은 지구 반대편이라는 공간을 뛰어넘는 쌍둥이 정권이 아닌가 헷갈릴 정도다.
 
  대통령 취임 2년 만에 냄비시위대에 의해 쫓겨난 델라루아 정권은 경찰력을 동원한 과잉단속이 문제였다. 성난 민심을 달래기보다는 무력진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이 실수였던 것이다. 대통령궁을 향해 물밀듯이 밀려오는 시위대를 막지 못한 경찰들은 최후 수단으로 기마경찰대를 투입했고 이 과정에서 5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터진 것이었다.
 
  경찰력에 한계를 느낀 정부는 국경수비대의 투입을 고려하고 군부의 개입을 요청하지만 군부는 민간시위대를 진압하는 데 병력을 투입할 수는 없다며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최후의 보호막이 없어진 델라루아 대통령은 결국 사임을 결정하고 대통령궁 옥상에 헬기 대기를 명령한다. 시위대를 피해 우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보자는 결정이었다.
  
시장 출신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
 
  당시 아르헨티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전국 각처의 국민들이 냄비를 들고 일어나 정권퇴진운동을 벌였던 2001년 12월 아르헨티나로 되돌아가보자.
 
  필자는 당시 델라루아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어 그의 퇴진 모습을 비교적 자세히 지켜볼 수가 있었다. 또한 실질적으로 그의 퇴진운동에 앞장섰던 시위대 대표와도 안면을 터놓고 있었다. (☞관련기사 : '권력 없는 정부,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지방 공업도시인 코르도바 출신인 페르난도 델라루아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시(市)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치고 1996년 전통적인 보수정당 라디칼당(UCR)의 공천을 받아 민선 시장에 당선됐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장이 된 델라루아는 시 지하철 구간 확장공사, 문화공간 확대 등 괄목할 만한 치적을 쌓았다. 그리고 4년 후인 1999년 대권에 도전, 48%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이 된 델라루아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대로 긴축 경제 조치를 단행한다. 노동자와 공무원들의 임금 동결, 연금 인상 거부 등 각종 개혁을 밀어 붙여 소비를 위축시킨 것이다. 국내경기의 냉각으로 국고수입이 줄어들자 그가 취한 정책은 금융시장의 개방이었다. 외자를 끌어들여 급한 불을 꺼보자는 것이었다.
 
  델라루아 정부의 외자유치 정책은 경제부를 장악한 미 하버드대 출신 경제각료들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정책은 결국 그의 임기를 단축시켰다. 정치가 불안해지자 아르헨티나 금융가를 장악했던 단기 외국자본들이 일시에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국고가 고갈된 정부는 외채 원금상환 독촉과 이자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민간 예금 동결이라는 악수를 두게 된다. 은행에 예금된 돈을 찾기 위해 은행 앞에 장사진을 이룬 예금자들은 급기야는 냄비를 두들기며 정권퇴진 운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정부가 서민예금을 동결해버리면 우리는 무얼 먹고 사느냐"는 항의였다. 그때가 2001년 12월 1일이었다.
 
  예금주들의 냄비시위는 초반에는 아주 평화로웠다. 정부가 최소한 서민 생활비 정도의 금액은 인출을 허용하라든지,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한 예금인출을 허용해주라는 요구가 대다수였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노총(CGT)과 노동자연합(CTA)이 냄비시위대에 합류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정권 퇴진운동으로 확산된 것이다.

  아르헨티나 노동자들과 델라루아 정권은 취임 초부터 노동법 개정을 두고 첨예한 대립각을 세워왔었다. 정부가 외국기업들에게 투자환경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노동법을 대폭 손질했기 때문이었다. 외국투자기업들의 요구대로 고용조건과 퇴직조건을 대폭 완화하고 직장 내 노조세력의 약화를 노린 것이다. 요즘 말로 하지만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쏟아 낸 것이다.

  이에 불만을 갖고 기회를 노리던 노조세력들은 냄비부대에 합세, 정권퇴진 운동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임금동결과 긴축정책에 불만을 품은 공무원들과 정치세력들이 가세하면서 사회는 급속히 혼란해졌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지지도는 연일 기록적인 하락세를 보인 건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정부 기강이 무너지자 각종 범죄가 급증하고 급기야는 극빈자들이 공공연하게 식품점을 터는 약탈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무정부상태가 된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정부는 일반예금 동결조치를 해제하고 공무원 연금 기금을 임시로 끌어다 사용하는 안을 고려했지만 델라루아는 공무원들의 반발을 의식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우물쭈물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민심이 정부로부터 떠났다는 사실을 확인한 집권여당은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외면하고 야당은 노조세력을 움직인다. 최후의 일격을 가하라고 부추긴 것이다.
 
  정치권의 지원을 등에 업은 수십만의 노동자들과 냄비부대는 대통령궁 앞 '오월의 광장'에 모여 정권퇴진을 한 목소리로 외친다. 시위군중에 대통령궁을 포위당한 델라루아 정권은 경찰력을 투입해 진압을 시도하지만 시위대 해산에 실패한다.
 
  이때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게 기마경찰대의 투입이었다. 그러나 말을 탄 경찰들과 시위대가 한데 어우러져 밀고 밀리는 혼란 중에 말굽에 밟혀 부상당한 시민들이 늘어났다. 말발굽에 밟혀 피를 흘리는 시민들을 지켜본 시위대는 흥분하기 시작 했고 폭력화됐다.
 
  시위대는 보도블록과 각목으로 경찰들과 맞섰다. 수적으로 불리한 경찰은 고무탄과 최루탄을 발사하며 방어선을 구축했다. 당연히 수많은 사상자가 생겨났다. 경찰력의 한계를 느낀 정부는 군부에 지원을 요청한다. 군을 투입해 시위대를 막으라고 명령한 것이다. 하지만 군 수뇌부는 민간인들의 시위진압에 병력을 투입하는 일은 없을 거라며 일언지하에 대통령의 명을 거역하기에 이른다.

군부와 정치권 어느 곳도 자신을 지탱해줄 버팀목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델라루아 대통령은 사임을 결정하고 성난 군중들을 피해 헬기를 타고 도망치듯 대통령 궁을 빠져나갔다. 그때가 2001년 12월 20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아르헨티나 전국을 휩쓴 정권퇴진 운동은 27명의 사망자와 2000여 명의 부상자라는 인명피해를 입히고 막을 내렸다.
 
 
민심을 역행하고 경찰력과 군을 이용해 정권을 유지하려 했던 델라루아 정권의 최후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민심은 천심'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전국적인 촛불시위에 직면하고 있는 MB정권도 한국판 델라루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바닥민심의 동향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또한 공권력을 이용해 민심잡기에 나섰다 실패한 델라루아 정권을 타산지석으로 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