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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시대유감

비자면제 프로그램도 졸속외교.

by G_Gatsby 2008. 5. 21.


  쇠고기 협상이 졸속 외교 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졸속 협상이 있다. 대미외교의 최대 수확이라던 비자면제 프로그램이다. 이것도 우리에게 득이 되는 협상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대미외교를 통해서 무엇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 했을때 교황의 방문시기와 겹쳐서 미국의 대접이 좀 소홀했다. 그리고 순방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갈때에도 국가 귀빈에 준하는 대우가 부족했다고 한다. 한 나라의 국가 지도자가 공식 방문하는데 마중도 환송도 없었다면 이것은 좀 너무하지 않은가.

  우리 정부는 세계화가 아닌 미국화를 꿈꾸고 있는데, 정작 미국은 잇속만 챙기고 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아메리카 프렌들리"를 외치는 정부의 외교 활동이 굴욕적이라면 이건 국민들에게도 굴욕적이다.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와 "비자 면제 프로그램"이 최대 수확이라고 말을 했는데, 쇠고기에 이어 비자 면제 프로그램도 알고 보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비자면제 프로그램(VWP) 양해각서에 관한 논평
- 숨겨져 있는 또 하나의 굴욕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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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다음 날,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미국과 또 하나의 협정문에 서명을 한다. 비자면제 프로그램(VWP) 가입을 위한 양해각서(MOU)라는 제목의 협정문은 앞으로 한‧미 양국이 잘 협력해서 한국인들이 미국에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방미기간 중 획득한 유일한 성과인 것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또 하나의 굴욕협상, 비자 면제 프로그램 양해각서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양해각서는 성과가 아니라 또 하나의 굴욕 협상이다. 한국 정부가 서명한 VWP 양해각서는 비자 면제 프로그램이 아니다. 비자제도가 전자여행“허가제”로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현재 조건대로 한국이 VWP 가입국이 되면, 한국 여행자들은 미국에 가기 위해서 전자여행허가제를 통해 입국자격 심사를 받아야 한다. 수수료(Fee)도 지불한다. 이것은 비자제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한국이 서명한 VWP는 비자 면제 프로그램이 아니라 비자 왜곡 프로그램이라고 번역해야 적당할 것이다. 비자면제란 우리가 유럽에 갈 때처럼 자유롭게 출입국 할 수 있는 것을 말하지, 미 대사관 앞에서 서던 줄을 없애고 새로운 심사를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미국의 새로운 비자제도 도입시도에 대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맞은편에서 양해각서에 서명했던 미 국토안보부(DHS)의 처토프 장관은 유럽언론과의 인터뷰에서 VWP는 더 이상 비자 면제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미국 대표도 이것이 비자 면제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만 이것을 비자 면제 프로그램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한국 정부의 또 다른 “번역 실수”인가? 아니면 쇠고기 협상에서 보여주었던 습관성 퍼주기 근성인가? 혹은 미국의 의도적 기만인가?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전자여행허가제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추진되는 여행자 정보 공유 협정이다. 전자여행허가제에서 입국자격 여부를 심사하기 위해서, 미국은 한국 국민들의 사법기록 등 개인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이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된다면, 미국 정보기관에서 한국 국민들의 과거사를 조회해볼 수 있게 되고, 미국으로 여행을 신청했던 어느 여행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될 것이다: “5년 전에 이런 일을 하셨군요. 미국 입국은 조금 어렵겠는데요.”

한국 국민의 개인정보는 미국 정보기관의 손 안에

  보편적 인권, OECD의 프라이버시 가이드라인에서 보장하고 있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은 정부는 알고 있을까?

  애석하게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양해각서는 그렇게 교환된 개인정보들이 양국 정부 내에서 다른 기관에 추가적으로 배포하는 것까지도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정 목적을 위해 수집된 개인정보는 그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파기하는 것이 프라이버시의 기본 원칙이다. 그래서 현행 공공기관 개인정보 보호법은 정부 부처 간에도 개인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얼마 전 하나로 텔레콤에서 수집한 개인정보를 다른 목적을 위해 제 3자에게 넘긴 것이 문제가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개인정보 유출 행위가 양 국 정부에 의해서 합법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마지막 문제는 한국과 미국이 합의한 조건들이 다른 나라는 수용하고 있지 않은 불평등한 조건들이라는 것이다. 외교통상부가 지난해 국정감사 때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요구했던 VWP 가입을 위한 전제조건들은 전자여권 도입, 전자여행허가제 협조, 여행자 정보 공유 협정 등 총 11가지이며, 이 조건들은 이 번 양해각서에 모두 수용되었다.

다른 나라는 서명하지 않은 불평등한 가입조건들

  한국이 서명한 조건들은 현재 VWP에 가입되어 있는 일본, 싱가포르, 유럽연합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조건들이다. 이번에 VWP 양해각서에 서명한 한국과 동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만 수용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외교통상부는 VWP에 이미 가입되어 있는 다른 국가들과의 형평성이 양해각서의 기본 원칙이라고 별도의 설명 자료와 그동안의 보도자료를 통해 설명해 왔다. 지난 2월 인권단체 연석회의는 형평성이라는 원칙을 강조했던 외교통상부에게 이렇게 새로운 조건들이 많은데 형평성을 어떻게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물은 바 있다. 외교통상부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타국과의 형평성 관련, 미국은 현재 VWP 가입된 27개국과도 우리와 협의 중인 MOU 체결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우리를 비롯한 신규가입국과 기존 가입국 모두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이를 위해 동일한 MOU 를 체결한다는 방침임.”

  해석하면, 우리가 어떠한 악조건으로 미국과 협정을 체결하더라도, 기존의 다른 국가들도 우리의 양해각서를 표준으로 새로운 양해각서를 체결할 것이기 때문에, 타국과의 형평성은 자동으로 유지된다는 내용이다. 참으로 편리한 대답이다. 일본도 우리와 미국의 쇠고기 협상내용을 따라서 쇠고기 검역기준을 완화할 것이라는 정부의 희망찬 대답과 어찌 그리 똑같은가. 또 아무리 나쁜 조건이라도 다른 나라들과 같이 당하면 괜찮은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는 한국 정부의 고유한 속성인가.

  한편, 위에 나열된 조건들은 미국의 국내법인 “9/11 위원회 법”에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한국과 미국의 비자 면제 협상이란, 미국의 국내법이 정해주는 대로 한국의 법과 제도를 수정해주는 일방적 전달과 수용 협상에 불과한 것이다.

정보 공개 안하는 외교통상부, 국민의 알 권리 침해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 못한 외교통상부는 인권단체 연석회의의 협상 관련 정보 공개 요구에 대외비라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협상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면 국민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타국의 정보기관으로 넘어가게 된 중요한 사항에 관련해 어떻게 의견을 가질 수 있으며, 시민사회의 건강한 비판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번역 실수가 있는지 없는지 누가 검증한단 말인가?

  외교통상부는 지난 협상 내용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차, 2차, 3차 기술협의회의 회의록과 앞으로의 협의 일정 및 논의내용 등을 공개하고, 국민들의 목소리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출처 : 인권단체 연석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