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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우리시대 동화

콘크리트 장벽 앞에 난 언제나 빨갱이

by G_Gatsby 2008. 6. 2.

촛불집회를 마치고 나니 새벽이 되었습니다.
황금같은 주말, 한 주 동안 생업 전쟁에서 고생했던 몸을 침대에 눕히지도 못한채 밤을 꼬박 세워 버렸습니다. 묘한 패배감 같은 것을 느끼며 무작정 터벅 터벅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가까운 곳에 작은 아버지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밥 이라도 얻어 먹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 콘크리트 종교 "

작은 아버지는 돈 복이 많다는 말을 많이 듣는 분 입니다. 시대를 잘 타고 났는지, 수완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는 일마다 성공을 했습니다. 돈이 많아서 인지 큰소리 꽤나 치는 분입니다. 아들 둘 낳고 사는 덩치 좋은 사촌동생도 아버지 앞에서는 한머리 어린 양입니다. 물론 나한테는 언제나 반말을 지껄이며 건방을 떠는 어린 쥐(Not Orange) 같은 놈 입니다.

작은 아버지는 대단한 애국자 입니다. 모 정당에 대한 지지는 종교적 관점에서야 해석이 가능합니다. 자신이 살면서 누려온 모든 것이 모 정당으로 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볼땐 어떤 연관성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분들의 말씀은 "코란"과 "성경"에 나오는 가르침 정도로 생각 합니다. 하지만 세금은 잘 안냅니다. 무척 아까워 할뿐 아니라 위법과 적법의 경계선 상에서 늘 줄타기를 합니다. 그것도 그분들이 몸소 보여준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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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야기는 가족이나 친한분 일수록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더군다나 지지하는 성향이 다를때에는 논쟁을 피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제가 오래전, 그러니까 피끊는 젊음을  못이겨 작은 아버지께 침 좀 튀기다가 "집안 경조사 참가 금지" 조치를 당한 경험에서 말씀 드리는 겁니다. 정치적 논쟁은 단란한 가족을 적대적 관계로 만들 뿐 아니라 지지세력 확보를 위하여 불필요한 행동을 유발 합니다. 저도 15살난 조카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뇌물 2만원을 지출하였으나 배신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문의 족보에 명시 되어 있는 가족 서열의 원칙에  의해서 패배할때의 심정은 정말 비참합니다. 그날밤 꿈에는 어김없이 드넓은 벌판에서 10만 대군을 맞이하여 홀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는 꿈을 꾸곤 합니다.

모 정당의 정치자금 비리가 폭로 되었을때 였습니다. 신문과 방송에서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때 작은 아버지는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나는 놈이 어딨냐" 는 논리로 무마 했었습니다. IMF가 터졌을때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이게 다 데모 하고 난리 치는 놈들 때문" 이라는 논리로 마무리 하셨습니다. 그때 제가 침좀 튀겨가며 작은 아버지의 논리의 모순성에 대해서 비판을 했었습니다. " 머리에 피도 안마른 발갱이 같은놈" 이란 말씀을 던지셨고, 저는 1년동안 가족행사에 참가하지 못하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작은 아버지는 TV를 잘 안보셨습니다. 아침 마다 배달되는 조선일보만 두시간씩 꼼꼼히 읽으셨습니다. "모든게 노무현 탓"이 되는 사회 풍조가 만연 했습니다. 그때 무척 기뻐하며 잃어 버린 10년을 되찾자는 운동에 적극 동참 하셨습니다. 모 후보와 악수를 하고 왔다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습니다. 개표 방송땐 2시까지 가슴이 벅차서 잠을 못 주무셨다고 했습니다. 죄송스럽지만, 내 눈에는 특정 종교집단에 열광하는 광신도 같이 보였습니다.
 
" 난 언제나 빨갱이 "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아침 일찍 찾아온 사촌 형을 그래도 가족들은 반갑게 맞아 줍니다. 뭐 반갑게 맞아 주는 척 하는지도 모릅니다. 덕분에 샤워도 하면서 숨 좀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아침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디 갔다가 오냐는 작은 아버지의 말에 "촛불 집회"에 밤새 참가 했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어짜피 지난 세월동안 찍혔던 인생인데,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었습니다. 예상 했던데로 "미친..." 이라는 말을 하려다가 밥 먹고 나서 하자며 숨을 고르 십니다. 헬쑥한 조카의 얼굴이 그래도 안돼 보였나 봅니다. 덕분에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이명박에 대한 변론을 시작 하십니다. 대통령은 존경해야 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실이 많을 것이다. 못 먹고 못살던 시절을 생각해라. 미국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겠냐는 등의 말이 이어집니다. 나이도 먹은 놈이 무슨 데모를 하느냐고 다그 치십니다. 너무 억울 했습니다. 그 때 발끈해서 딱 12초 정도 항변 했습니다.
 
순식간에 저는 빨갱이로 몰렸습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것을 건드리고야 말았습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몇살인데 그러시냐고 항변 했습니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놈 이라는 말이 돌아 왔습니다. 30대 후반인 내가 아직도  머리에 피가 마르지 않았나 봅니다. 할아버지 품에 안겨 있던 2살된 사촌 조카가 오줌을 내지르는 바람에 논쟁은 일단락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를 아십니까"에 끌려갔다가 도망 나오는 심정으로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고 나왔습니다. 나오면서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집안의 어른인데, 내가 좀 심한말을 했나?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사실 별말 한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차를 안가지고 간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전철에 몸을 싣고 가면서 많은 생각을 해 봅니다. 내가 정말 빨갱이 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봅니다. 초등학교 미술시간때 그렸던 늑대 얼굴을 한 인민군의 모습을 기억해 냅니다. 운동권 친구들을 피해 다니던 대학 시절을 생각해 봅니다.  내가 왜 빨갱이로 몰리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인터넷은 커녕, 컴퓨터도 켤줄 모릅니다. 제 블로그에는 올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안심하고  조용히 항변해 봅니다.

" 잉~ 저는 빨갱이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