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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층간소음, 결국 망치를 들다.

by G_Gatsby 2010. 1. 13.

새해가 된 후, 밤에 잠을 잘 못잡니다.
낮에는 눈이 충혈되고 밤에는 눈이 따갑습니다.
누군가를 그리워 하며 지새우는 설레이는 밤, 열공을 하며 지새우는 밤, 독서에 빠져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지새우는 밤, 세상의 고민에 허덕이느라 잠들지 못하는 밤 ,무비홀릭에 빠져서 밤마다 수퍼맨이 되는 밤.  뭐 이런밤은 아닙니다. 잠에 잠을 잘 못자는 이유는 바로 층간 소음 때문입니다.

# 1

어울려 살아가면서 서로간의 소음이야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소음이 아닌 이상 서로 얼굴 붉히며 시끄러워 할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웬만한 소음은 꾹 참고 잘 정도의 수면욕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경험하고 있는 소음은 꽤 많은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불면의 밤에서 해방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처음에는 윗집에서 나는 소리인줄 알았습니다.
새벽 두시쯤 테이블 끄는 소리, 그릇 집어 던지는 소리, 발로 쿵쿵 바닥을 찍는 소리가 나더군요.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노래 부르는 소리가 나더군요. 노래방기기를 통해서 말이죠. 술취한 아주머니의 '굳세어라 금순아' 였습니다.

그래서 침실을 다른 방으로 옮겼습니다.
근데 소음이 윗집이 아니라 옆집이더군요. 이제는 더 선명하게 소리가 들립니다. 관리실에서 주의가 왔는지 노래는 부르지 않습니다만, 자정 넘어 못질하는 소리가 몇번 들립니다. 그리고 며칠전에는 새벽 4시에 싸움을 하더군요. 부부 사이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목소리를 들으니 나이가 어린 사람들인것 같았습니다. 덕분에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남희석씨, 나좀 살려줘~"

아랫집에서 저한테 항의 방문을 했습니다.
애들이 밤늦게 뛰어 다니는 소리에 잠을 잘수가 없다는 것이죠. 전 애가 없을 뿐 아니라 뛰는걸 죽기 보다 싫어한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리고 옆집에서 나는 소리에 나도 잠을 잘수가 없다고 말을 했죠. 함께 옆집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없는건지 없는척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랫집 청년과 저는 21세기 주거문화의 개선점과 이웃간의 공공질서와 윤리에 대해서 20분이 넘게 토론을 했습니다. 결론은 '잠을 못자 죽겠다' 는 것이죠.

# 2

프랑스의 소설가는 현대 도시생활을 ' 외로움이 내는 소음' 으로 표현했습니다.
도시는 이웃간의 왕래가 사라지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삭막한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은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어울림이 만들어 내는 따뜻한 사랑과 정을 느낄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외로움이 내는 소리'에 집중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외로움이 만들어 내는 소리'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TV와 같은 매체에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 속에서 만들어낸 꾸며진 웃음과 꾸며진 세상에 몰입하게 되는것이죠. 그래서 현실과 가상이 분리되는 특별한 외로움에 빠져듭니다. 혼자 차를 타고 출근을 하고, 혼자 런닝 머신 위에서 운동을 합니다. 혼자 먹는 밥이 익숙해지고 혼자 즐길수 있는 유흥과 문화에 빠져들게 됩니다. 점차 다른 사람의 소리에 관심이 없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잊어 버리며,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횟수도 줄어 들게 됩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지면, 주위의 소리에는 무관심해 집니다.
자신이 내는 소리에는 철저히 무관심해 지는것이죠. 그래서 누군가의 방해와 지적에는 화가 나게 되고, 누군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면 흥분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배웠지만 어울려 살아가는 법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너와 내가 만나서 '우리'가 되는 것에도 익숙하지 못하고 '우리'의 범위도 계속 작아 지는것 같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콘트리트 못을 한박스 사왔습니다.
이웃집의 소음을 해결하는건 쉽지 않습니다. 황병기씨의 '미궁' 이라는 연주곡도 준비했습니다. 한 번 들으면 소름이 끼쳐서 미칠것 같다는 그 연주곡입니다. 새벽에 소음때문에 깨어나면 벽에 못을 박을까 합니다. 현관앞에 연주곡도 틀어놓구요. 서로간의 소음에 익숙해지면 싸울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새벽 두시 이주연의 영화음악이 시작될 쯤, 우리가 살고 있는 어딘가에서는 뻘건 눈으로 벽에 못을 박고 있는 한 사람이 있을겁니다. 영화음악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자진모리 장단에 맞추어 못을 박는 소리는 멈추지 않을지도 모르죠. 소름끼치는 가야금 소리와 함께 말입니다. 저도 이제 도시인이 다 되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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