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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영화본후.

식코(sicko) - 미국식 유토피아의 진실.

by G_Gatsby 2008. 4. 15.

                 식코(sic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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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 감독의 미국식 민주주의,영웅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장르의 한계를 가짐에도, 이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와 어깨를 겨루며 꽤 오랜 시간동안 미국에서 상영이 되었고 의료보험 민영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처음 개봉이 되었을때에 느꼈던 것은 충격이었고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되면서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영화의 내용을 보면, 마이클 무어가 왜 극우보수파의 비난을 받는지를 잘 알수 있다. 그쪽편을 살짝 들어주자면 미국에서 의료보험을 잘 받고 있는 사람과의 비교가 나오지 않는 것이 조금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식코(Sicko)가 그러한 것을 목적으로 한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그토록 찬양하고 숭배하던 미국식 유토피아의 진실인 것이다.

영화는, 의료보험료 때문에 몰락한 중산층 부부의 억울한 이야기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부당한 미국의 의료보험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진료비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이어진다. 60,000 달러에 달하는 봉합 수술비 때문에 중지 하나를 쓰레기장에 버려야 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다. 그리고 영화는 세계최고의 의료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정치가의 위선적인 연설로 이어진다.


"찬란한 신자유주의 경제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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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토록 찬양하고 배우고 싶어 했던 미국식 자본주의의 참 모습이다. 그리고 지금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모습의 미래를 본다. 경제성장과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빛의 이면에는 이렇게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하는 것이고, 그 그림자는 어김없이 약한자의 몫이다.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가져가야 할 몫이 그만큼 적다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 마저 위협한다.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이 이야기 하는 인권의 참모습은 바로 그것이다. 정작 자국민의 건강한 생활도 보장하지 못하는 그들은 다른 나라의 사형제도에 대해서 비난한다. 이것은 자유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이기적인 사회가 낳은 가장 비극적인 결론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자본주의와 미국의 예정된 몰락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을 추종하는 우리 사회 지도자의 모습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준비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현실을 그려 본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사회참여 기회의 평등과 생존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국가가 존립해야 할 이유는 없다. 대의정치에 기반한 민주주의 이념은 경제적 부에 따른 계급적 차등을 낳게 하고 있으며,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를 보면서 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한 해답을 찾기 힘들다는 것은 큰 충격이다.

" 헐리우드의 속임수, 그들에게 해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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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국가가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하는 캐나다,영국,프랑스등의 다른 선진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료 교육, 무료 진료를 통해서 살아가는 프랑스 한 가족의 인터뷰를 싣는다. 그리고 911테러때 목숨을 바쳐 사람을 구했던 국민적 영웅들의 초라한 모습을 비추어 간다.

헐리우드에서 미국의 가치를 찬양하는 영화들이 쏟아지는 것은 어제 오늘일은 아니다. 그들의 경제적 이기심을 합리주의로 미화하고, 어린아이로 대표되는 약자를 보호하는 영웅들의 무용담은 그들 이면의 약육강식의 경제논리를 감추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전세계의 절대선 임을 강조하며 우리를 세뇌시킨다.

오랜 역사와 민주주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유럽의 사회보장 제도는 이면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력적인 국가 모델이 된다. 진실을 논하기 전에 건강할 권리와 배울기회를 국가로 부터 제공받는 다는 것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써 능동적인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가 최우선시 해야할 사회공동체의 목적이 무엇이며 어떻게 실현해 나가느냐는 숙제를 안겨준다. 침묵하는 다수의 약자는 권력을 가진 소수의 힘에 억압받고 있는 인류 역사의 진리를 일깨워 준다.

"침묵하는 우리, 병들어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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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의 의료보험 체제를 말해주며, 기득권의 가장 민감한 이념문제로 나아간다. 얼마전까지 금기시 되었던 반사회주의 이념이 기득권의 권력 보호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모순된 사실을 말해준다. 미국 911 테러사고의 영웅들이 그들이 인류의 적이라고 외쳐왔던 사회주의 국가로 건너가 무료 진료를 받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미국이 외치는 유토피아의 진실된 모습으로 비춰진다.

인권을 최우선시 한다는 그들의 거짓은, 그들이 그토록 조롱하는 후진국 쿠바의 모습을 통해 무엇이 인간의 삶에 가치와 행복을 가져다 주는 지를 말해 준다. 필요가치가 없어지면 존재가치조차 무시해 버리는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알려 준다. 신자유주의는 이렇게 가진자만을 위한 무한한 자유를 제공하고 있다.

성장을 통한 수입의 증가는 지출의 증가를 함께 동반한다. 더 많은 수입을 얻기 위한 경쟁은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하여 개량화를 요구하게 되고, 승리하기 위한 더 많은 자본을 요구한다. 이런 경쟁은 승리한 사람보다 몇배 많은 패배자들을 양산한다.

주택구입에 대한 부담과 사교육비의 증가를 초래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현실을 볼때 수입 경쟁만 강조하는 국가의  모습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개인의 지출을 최소화 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선진국의 모델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미국식 유토피아의 진실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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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의 대립은 권력을 옹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 점차 밝혀진다. 이념의 대립으로 충분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가 국민들의 자발적인 생존권투쟁조차 크게 위협하고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 하다. 국민을 보호하고 있던 국가의 권력이 이제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는 것이다.
침묵하고 있는 다수는 사회의 부조리속에 할말을 잃어 간다.

10년후, 우리나라에서 식코에 출연했던 캐릭터가 우리의 아버지,형제의 모습으로 바뀌어 상영이 된다는 상상을 해보면 끔찍하다. 평생을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살아왔던 고달픈 우리네 삶의 마지막 종점이 이 영화처럼 그려진다는 것은 비극이다.

식코(Sicko)는 민간의료보험의 문제점만을 지적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헛된 이념의 논쟁과 애국심속에 스스로의 삶을 파괴해갔는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경제 민주주의는, 가진자의 부를 나누는것이 아니라 사회적 참여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며, 이것은 민주주의 국가가 존립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는 끝나지만 혼란스러운 생각은 계속 맴돈다. 미국식 유토피아의 진실을 보면서, 우리 세대의  정치 사회에 대한 무관심이 불러오고 있는 이 미래의 악몽이 떨쳐지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