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이라는 이름이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이 영화는 꼭 봐야할 영화였다.
어릴적 비틀즈에 대한 음악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위대한 팝스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특별했다. 그것은 밥 딜런의 이야기를 그린 ‘I'm Not there' 를 꼭 봐야 했던 이유와 동일하다.
아마도 20세기 최고의 음악가를 말한다면 비틀즈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비틀즈의 음악이 나온지 반백년이 되었고, 존 레논이 사망한지 28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다. 설사 비틀즈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음악은 한번씩 들어 봤을 것이다.
“ 자유로운 영혼, 존 레논 ”
영화 ‘존 레논 컨피덴셜’은 위대한 팝스타 존 레논에 대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태로 만들었다. 비틀즈 이후, 존 레논의 행보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존 레논의 노래를 감상하고, 최고의 아티스트로 평가하기 위한 영화는 결코 아니다. 비밀 스러웠던 그의 인간적인 모습과 자유로운 영혼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위대한 팝스타에게 총성이 울려 퍼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대중을 향해서 노래를 부르던 그의 힘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비틀즈의 성공으로 부와 명예를 가졌던 그가 왜 어렵고 힘든 길을 가야 했을까? 이 위대한 예술가는 자유로운 영혼을 찾아 힘든 길을 떠났고, 결코 두려워 하지 않았다. 그는 대중으로부터 물려 받은 모든 것을 다시 돌려 주고자 했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베트남전쟁과 캄보디아 전쟁에 대한 존 레논의 입장은 확고 했다. 완벽한 반전주의자가 되어 평화를 외치는 침대위의 퍼포먼스는 세계적인 관심을 끌어 모았다. 구속된 존 싱클레어를 위해서 12시간에 걸친 콘서트를 개최했고 그것은 미국인들의 관심을 집중 시켰다. 그리고 존 싱클레어는 즉시 석방되었다. 이것은 자유와 권리에 무관심한 대중들을 일순간에 변화 시켰다. 그는 줄곧 'Give peace a chance' 를 불렀다. 이제 그는 미국정부와 심각한 대립을 세우기 시작한다.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관심을 버려야 한다” - John Lennon
냉전의 시대를 바라보는 그의 고뇌는 커져만 갔다. 그가 말하는 Revolution은 바로 평화와 사랑이었다. 비틀즈의 인기를 모두 버리고 그가 민중 속으로 뛰어 들어간 것은 권력과 기득권을 향한 정면 승부 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유를 향한 위대한 도전 이었다.
미국의 닉슨 정부는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존 레논을 탄압 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 요코 오노를 마녀에 비유하기도 했다. 존 레논의 영혼을 갉아 먹고 있다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이민법을 근거로 레논을 추방시키려고도 했다. 그를 좌파주의자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평화와 혁명을 노래 했다.
“ 인간 존 레논 "
영화를 보면서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 그가 오노 요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숀 레논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권력과 싸우는 투쟁속에서 평화를 외치던 그가 갓 태어난 아들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바라 본다. 위대한 팝스타이자 반전운동의 선두에 섰던 그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이 한 장의 사진이 말해 준다. 그는 영화속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외친다.
몇발의 총성이 울려 퍼지고, 그는 사람들을 떠나게 된다. 그를 애도하는 물결은 전세계를 뒤엎었다. 그가 가진 음악적인 천재성과 대중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간결했다. 그가 죽은 이후에도 그 메시지는 여전히 살아 남았다.
영화는 존 레논의 음악적 일대기가 아닌, 대중속의 혁명가로 레논을 그리고 있다. 그의 위대한 음악도 시대를 바라보는 자유로운 영혼에서 만들어 졌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함께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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