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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그림자 인생 - 쥐와 벌.

by G_Gatsby 2009. 7. 2.

이른 산책을 나서봅니다.
늘 운동부족에 시달리면서도, 운동복을 입고 운동장을 뛰어 다닐 용기를 내지는 못합니다.
요즘 시대가 불안한 만큼, 날씨도 꽤나 변덕스럽습니다. 비가 내리다가 갑자기 햇살이 따가워 집니다.
눈부신 햇살이 내려옵니다.
가뜩이나 작은 눈이 햇살 때문에 제대로 뜨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보도블럭을 바라보며 걷습니다. 쓰레기 더미 위에서 쥐새끼 한마리가 놀라 달아납니다. 제가 무서웠나 봅니다. 그래서 혼잣말로 한마디 해줍니다.

'니가 요즘..살판 났구나..'


" 그림자 인생 "

조그마한 공장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갑니다.
퇴근 시간인지 사람들이 조금씩 거리로 쏟아져 나옵니다. 회색 작업복을 입은 중년의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입니다. 무엇이 바쁜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서둘러 걸음을 옮깁니다. 본의 아니게 뒤를 따라 같은 길을 걷습니다.

무엇이 들었는지 두툼한 가방을 어깨에 메고 걷습니다. 햇살 때문에 더운지 연신 땀을 닦으며 걷습니다. 그러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아주머니를 따라 걷던 그림자도 함께 걸음을 멈춥니다.

횡단보도 앞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차들이 질주하는 소음과 매연 때문인지 모두가 굳게 입을 닫고 있습니다.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혀 있습니다. 가방을 잡은 손위에는 굳은살과 주름살이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이유없는 서러움이 밀려오던 기억이 납니다.
하루 18시간의 중노동을 하면서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폐병과 질병으로 목숨을 잃어가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100만불 수출 기념으로 모두가 기뻐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기업인들에게는 훈장이 수여되고, 그들을 위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주던 어느 독재자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노력하면 잘 사는 세상이 된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답던 시절에도 어느 작은 공장에서는 기침과 배고픔을 참으며 중노동을 하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어느 정치가는 자본이 만드는 유토피아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꿈꾸는 자본주의는 모두가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세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자본이 발달하고, 사회가 발달하면 세상에서 빈곤이 사라지는 세상이 될거라고 말입니다. 기업의 윤리의식이 빈곤을 구제하고, 발달한 노동력이 사회를 지탱한다고 말했습니다.그러기 위해서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미국은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빈곤은 사라지지 않았고, 노동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부자는 많아졌지만, 먹고 살 걱정을 하는 사람도 늘어났습니다. 기꺼이 공동체를 위해서 노동을 희생했던 사람들은 자본의 위력에 실체없이 붙어만 다니는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쥐 와 벌"

도스또에프스키'죄와벌' 의 주인공 처럼 우리는 늘 두가지의 윤리적인 습성에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고민은 안개처럼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늘 이상을 꿈꾸지만 현실은 늘 불편하기만 합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사람들은 또 다른 길을 걸어갑니다.
아주머니의 발걸음이 더 빨라집니다. 버스를 타고 가야 할듯한 거리를 아주머니는 열심히 걷습니다. 어느새 하늘은 다시 흐리게 변하고 아주머니의 그림자는 소리없이 사라집니다. 세상은 다시 어두워집니다. 열심히 걷던 아주머니의 모습이 시선에서 사라집니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재잘되며 길을 걷습니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심한 욕을 합니다.

'쥐새끼 보다 못한놈!'

주변에 경찰이 있는지 잠시 살펴봅니다. 다행이 들은 사람이 나밖에 없습니다. 심한 욕을 먹은 아이가 한마디 합니다.

'너 자꾸 그러면 벌받는다!'

놀리던 아이는 깐죽거리며 앞으로 도망갑니다. 요즘 아이들은 참 똑똑합니다.

신문에서는 오늘도 우울한 소리가 나옵니다. 우리 사회는 늘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 고민을 합니다. 노동인구의 50프로가 넘는 사람이 비정규직입니다. 이제는 불편한 진실을 터놓고 이야기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합당한 보상과 합리적인 제도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하늘은 비가 올듯 흐려집니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속에는 피곤에 절은 땀냄새와 말하지 못하는 고뇌의 시선만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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