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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12시 5분전

나그네의 걸음, 길위에 내려놓다.

by G_Gatsby 2009. 12. 1.


이사철이 훨씬 지났지만 저처럼 게으른 사람은 이제 이사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추운 계절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것이 그리 쉽지않습니다. 떠돌아 다니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어느 한곳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돌이켜 보니 일 때문에 참 많이도 돌아다녔던 것 같네요. 아마도 전생이 몽골 어느 초원에서 양떼들과 함께 이곳 저곳을 떠돌던 목동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길 위의 인생.

배창호 감독의 영화 ‘길’을 보면 평생을 길 위에서 떠돌며 보내던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있습니다.
아비를 떠나 처음 길을 나섰던 아이는 청년이 되어 다시 예전의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청년은 다시 길을 한 바퀴 돌아 흰머리 노인이 되었고, 그가 걸었던 그 길 위에 사랑을 묻고 아픔을 보듬어야 했습니다.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길을 걷고 또 걷다 보니 사랑이 떠나가 버렸고, 그것을 묵묵히 참고 또 걸으니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그런 길 위의 인연속에서 장돌뱅이는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시간속의 길을 걷다 보면, 이 길이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길인 것 같은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어떨땐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가야할때가 있고, 또 어떨땐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을 가지 못할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길’에는 다양한 회한과 후회가 담겨 있습니다.
늙어서도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깨닫게 되죠. 걸었던 길에 대한 후회도, 미련도 부질없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아마도 영화를 만든 늙은 감독의 인생에 대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길 위에서 만든 인연은, 수 많은 생각과 후회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만들어 냅니다. 사랑은 또다른 핏줄이 되어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미친 듯 미웠던 인연은 용서할 수밖에 없는 아픔의 인연으로 만들어 집니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 ‘길’은 우리의 인생을 한폭의 풍경에 담아냅니다.

나그네의 걸음.

길 위의 인생은 이렇게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끝이 없을 것 같은 길을 걷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때로는 홀로 걸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동행자가 있기도 합니다. 기쁨에 겨워 단숨에 언덕을 박차고 오르기도 하고, 슬픔에 울며 주저앉아 울기도 합니다.

길을 걷고 또 걸었지만 정작 그 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어느 스님은 우리가 걷는 인생을 나그네의 걸음으로 걸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단촐한 차림으로 머물려고 하지 않으고 가지려고 하지 않으며 그저 마주치는 인연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우리는 언제나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지만 결코 삶의 길을 가질수 없는게 인간의 운명입니다. 그저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으며 마주치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말이죠. 어쩌면 그것이 자신의 삶을 보듬어 안는 지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새 달력이 한 장 밖에 남질 않았습니다.
뒤돌아 보니 무엇하나 내새울게 없는 것 같습니다. 걸어올땐 몰랐지만, 지나고 나면 후회와 미련의 발자국만 남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러 있을수는 없겠죠. 또 내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 ‘길’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노구의 감독은 아픔과 아쉬움만으로 길위의 풍경을 그리진 않았습니다. 슬픔과 미안함, 고통과 아쉬움을 모두 내려놓고, 단풍이 곱게 물든 아름다운 길을 따라 다시 떠나갑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난 뒤의 발걸음이 참으로 가볍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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