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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길을 걷다

초식하는 영혼

by G_Gatsby 2010. 5. 6.

넉달째 급여를 받지 못해 쩔쩔매던 늙은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경기가 안좋다고 미루기를 한달.
사장이 해외출장 나갔다고 미루기를 두달.
경리부장이 그만두고 나가서 정산이 안되었다고 미루기를 세달.
급여 안준다고 큰소리 쳐서 기분나쁘다고 미루기를 네달.

사장이 퇴근하는 에쿠스 승용차를 온몸으로 세우고, 말리는 과장과 10여분 몸싸움을 하고, 평생 처음으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고 난 다음날. 해고 라는 말과 함께 누런 봉투가 땅에 던져졌다.
기름묻은 손으로 봉투를 가슴에 품고 나오던 날.
4년간 늙은 몸을 의지했던 낡은 공장 대문을 영원히 떠나던 날.
그는 더이상 솟구치는 눈물을 참을수 없었다.


"우리는 초식하는 영혼으로 태어났다."


우리의 몸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에도 식성이 있다고 한다.
스스로 얻어지는 것에 만족하며 마음의 부족함 없이 사는 영혼이 있다. 초식 동물들이 자연이 주는 섭리에 만족하며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는 영혼이다. 그 영혼은 초식하는 영혼이다.

강한자가 살아남고 약한자는 살아남지 못하다는 진리를 믿고 사는 영혼이 있다. 세상의 공평함은 가진 힘의 논리에 맞추어 지극히 공평해진다. 그래서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해야 살아남는다. 그 영혼은 육식하는 영혼이다.

생존을 위해서 적절하게 육식과 초식을 병행하는 영혼이 있다. 때로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지만 위기가 닥쳤을때에는 철저히 육식으로 변한다. 순종하며 사는것 같지만 끊임없이 기회를 노린다. 그 영혼은 잡식하는 영혼이다.

이러한 개개인의 영혼이 서로에게 이어져 사회의 분위기가 만들어 진다. 육식하는 영혼이 많을 때에는 우리 사회도 포악하다. 잡식하는 영혼이 많을 때에는 남의 탓이 많아 진다. 초식하는 영혼이 많아질때에는 인간의 도리와 절대적인 진리가 강조된다.


늙은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곰곰히 생각해 본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우리사회는 강자와 양자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사회가 아닌지 모르겠다. 적어도 인간의 사회에서는 서로간의 지켜야할 기본적 규범과 예의가 존재한다. 그것은 인류가 만든 어떠한 법률 보다도 위대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이러한 사실을 잊고 살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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