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길을 걷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세상

by G_Gatsby 2010. 5. 27.

할아버지 한 분이 슈퍼마켓 앞 평상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 거립니다.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버튼 하나를 누르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할아버지의 눈가에는 진지함이 가득합니다.

한가한 오후에 길을 걷다 보면 노인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청년들은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한가로운 주택가의 풍경은 조용히 세상을 걷고 있는 노인들의 풍경으로 가득합니다. 젊은이들이 만들어 내는 역동적인 풍경도 좋지만 조용하게 이어지는 노인들의 풍경도 따뜻하고 익숙 합니다.

헤르만 헤세
는 평생동안 산책을 통해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나무와 숲 사이로 난 조그마한 길을 걸으며 삶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조용히 길을 걷다 보면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하기도 하고, 그것이 만들어 내는 작은 움직임에 마음이 설레였다고 하죠. 그러한 미묘한 변화를 느끼며 자신의 감성을 펼치고 삶의 길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매번 익숙한 풍경을 통해서 변화하는 세상을 느꼈다고 하죠. 사색하며 느끼는 산책헤르만 헤세라는 위대한 작가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것이죠.




우리는 주위에 펼쳐진 풍경을 그저 일상으로 생각하고 답답해 할때가 많습니다.
늘 똑같은 풍경에 갇혀서 미래를 위한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TV나 매체에 매몰되어 사색할수 있는 시간을 잃어 버리기도 하구요, 행하지 못한 계획들에 짓눌려 내일의 기분을 망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여유로움을 찾을수 없습니다.
목적지를 향해서 그저 걷기만 합니다. 시작과 끝은 명쾌하지만 과정이 존재하지 않죠. 과정이 없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무언가 텅비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텅비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외로움이 찾아 옵니다. 그 외로움은 정말 힘든 것이죠.

휴대폰으로 문자 보내기를 마친 할아버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기쁨인지 연락을 받을 사람을 생각하는 웃음인지는 알수 없습니다. 한 참 후에 할아버지가 다시 휴대폰을 꺼내듭니다. 누군가에게 답장이 왔나 봅니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됩니다.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서 안경을 고쳐 씁니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의 옷차림이 아주 멋집니다. 길을 걸으며 연신 주위를 둘러 봅니다. 전봇대 아래에 놓여진 쓰레기 더미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목발을 짚고 걷는 아저씨의 다리를 유심히 살펴 보기도 합니다. 마치 어제와 다른 오늘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것 같습니다.

멀리서 할머니 한분이 보입니다. 할아버지의 걸음도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아까 보냈던 문자메세지의 주인공 같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는 할머니를 보며 또다시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됩니다.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또한가지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익숙하다는 것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는 것, 삶의 풍경은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는 이야기 > 길을 걷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뻔뻔한 세상아 일단 한번 덤벼봐  (12) 2010.05.30
나이 한살 더 먹기  (8) 2010.05.22
자전거가 있는 풍경  (12) 2010.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