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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길을 걷다

그림자가 닮았다.

by G_Gatsby 2010. 6. 1.

# 1

늦은 밤에 타박타박 길을 걷다가 낡은 트럭앞에 멈추어 선다.
발전기 소리가 요란한 트럭 앞에는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수염을 깍지 않은 아버지가 무언가를 맛나게 먹고 있다. 이제는 제철이 지나서 더워 보이는 떡볶이와 순대. 늦은 저녁인지, 자기전에 꺼진 배가 아쉬워 먹는 야식인지 알수는 없지만 불빛을 보고 날아드는 하루살이에도 아랑곳 없이 맛나게 먹는다. 자세히 보니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왼손잡이다. 그러고 보니 음식을 먹는 옆모습이 비슷하다.

혈육이라는 것은 참 묘하다.
다른듯 하면서도 함께 보면 비슷 하다. 그리고 아버지의 버릇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 진다. 아버지의 왼손은 아이가 물려받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의 덥수룩한 털도 물려 받게 될 것이다.



# 2

살다 보면 거울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랄때가 있다.
나이를 조금씩 먹어 갈수록 그럴때가 많아 진다. 어린 눈으로 무심코 바라보던 아버지의 모습이 잔상을 만들고 무의식적으로 그 잔상을 따라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 나이가 되었을때에는 내 모습은 아버지의 모습과 아주 흡사해 진다.

옆으로 누워 주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제 내 모습이 되었다.
스포츠 경기를 보며 혼자 흥분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제 내 모습이 되었다.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던 아버지의 모습, 슬픈 영화를 보면서 혼자 울던 아버지의 모습, 남한테 싫은 소리가 못하던 아버지의 모습. 이런 모습이 모두 나의 것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혈육이라는 것이 전해 주는 유전자의 성질은 대단한것 같다. 
어릴적에는 그저 겉모습만 닮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많은것들이 더 닮아 간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한계속에서 영원함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본다.
발전기 소리가 요란한 곳에 서 있으니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높아진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색한 경상도 사나이의 수줍은 안부인사. 그리고는 서로 할말이 없어 애꿏은 날씨 이야기만 늘어 놓는다. 아마도 나처럼 오른손은 호주머니에 넣고 왼손으로 전화를 받으면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리라. 혈육은 이러한 모습까지 닮게 만든다.


근사하게 요기를 마친 아버지와 아이가 이제서야 주위를 둘러 본다.
아버지는 바지 주머니에서 꼬깃하게 접힌 천원짜리 몇장이 꺼낸다. 화장지로 입가를 마무리 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똑같다. 트럭에서 나온 아버지와 아들은 어둑해지는 골목을 향해 타박타박 걷는다. 양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걷는다. 가로등에 비치는 두개의 그림자가 똑같은 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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