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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시대유감

이문열, 조선일보의 웃긴 논리

by G_Gatsby 2008. 6. 17.


" 사랑하는 이문열 작가여"

개인적으로 이문열씨의 소설은 참 읽기 편하다.
책을 손에 쥐면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그래서인지 그가 쓴 소설책은 거의 다 읽었고 책장 한편에 이문열씨의 소설책만 한가득 있다. 이번에 출판하기로 한 초한지의 경우도 내심 기대를 많이 했다. 소설가 이문열에 대한 사랑은 이처럼 각별 하다.

몇년전 이문열씨가 정치적 성향의 행보를 보였을때에도 별로 느낌이 없었다. 정치적인 성향은 누구나 다를수 있을뿐,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어떤 정치적인 성향을 가지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오늘 촛불 집회에 대한 그의  발언을 보았을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촛불집회에 대하여 의병 이라도 일으켜야 한다는 그의 말은 충격적이다.

"예전부터 의병이란 것은 국가가 외적의 침입에 직면했을 때뿐만 아니라 내란에 처해 있을 때도 일어나는 법"
"불장난을 오래하다 보면 결국 불에 덴다, 너무 촛불 장난을 오래하는 것 같다"
"사실 지지율 10%라든가, 이상한 형태의 여론조사는 솔직히 믿지 않는다"
"아마 지금과 같이 이렇게 민의가 왜곡된 이런 상태에서는 글쎄 뭐, 여론조사라도 플러스 마이너스 3% 하는 오차는 믿지 못하겠고, 지금은 적어도 플러스 마이너스 10% 이상 오차는 나는 것 같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에 대한 광고 게재 중단는  범죄행위이고 집단난동 행위다"
- 이문열씨의 발언-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의 논리는 이명박 정부의 과오는 인정 하겠지만 거기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의 기본적 분노를 불장난으로 폄하했다. 그의 소설속 이미지를 떠올리면 불장난은 어린 아이들이나 하는 것에 불과 하다. 이것은 지금의 국민적 분노가 어린아이의 장난과 같다는 것이다. 즉 권력의 잘못을 지적하는 행위 자체가 유치하고 우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론조사의 결과도 믿지 못하겠다는 논리를 편다.  이것은 지난 수년간 극우 보수세력들이 합리적인 논리를 찾지 못했을때 나오는 레퍼토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여론조사, 즉 민심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이념적 관점에서 좌파를 들먹이는 조중동과 정부의 생각과 동일하다. 그러면서 조중동에 대한 구독거부나 광고불매 운동을 범죄행위이며 집단 난동으로 규정한다.  무조건 촛불민심은 잘못되었다는 조선일보의 논조와 동일하다.

" 조선일보의 웃긴 논리"

100일 밖에 안된 정부를 보고 물러나라고 외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한다. 점잖은 말로 "음모"라는 용어를 잘못 쓰고 있다고 지적까지 한다. 과연 그럴까?

지난 정부가 출범한지 한달도 안된 시점에서 이미 조선일보와 이들 보수 세력들은 노무현 정부의 무능함을 비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론조사 결과 70%가 안되는 지지율을 비웃으며 노무현정부의 기대치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두달이 넘어서면서 부터 무능과 탄핵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선,중앙,동아 일보가 앞장서서 100일도 안된 노무현 정부를 실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논조는 내놓는 정책 마다 이미 싹수가 노랗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코드인사를 그토록 비판했다. 그들 스스로 반정부적인 태도와 논조를 가지고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불신을 외쳤다.

단지 정부가 바뀌었을 뿐인데, 그들의 논조가 180도 바뀐것은 무척 이상한 논리임에 분명하다. 노무현 정부는 안되고, 이명박 정부는 면죄부를 받아야 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사안에 대한 너무도 다른 시각은 도대체 어디서 굴러온 논리란 말인가. 그들이 수년전에 외쳤던 정권타도와 탄핵의 구호는 합리적이고, 지금 국민이 외치고 있는 반정부 구호는 이성을 상실한 아이들 장난이란 말인가? 아래 조선일보가 노무현 정부 40일에 맞춰서 쓴 칼럼을 한번 읽어 보면 그들의 논리가 얼마나 낮뜨거운가를 알수 있다.

[2003년 4월 조선일보 칼럼]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지 40일이됐다. 아직 당선자 티도 채 벗겨지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 40일이 마치 반년이나 된 듯이 느껴진다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젊은 참모들은 으레 이렇게 나올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은 원래 반(反)노무현 아니냐…. ”그러나 그게 아니다. 선거 때 대통령을 찍었거나, 찍지 않았더라도 대통령으로서 좀 잘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사람 가운데 이런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상한 일은 또 있다. 전(前) 대통령이건, 전전(前前) 대통령이건 간에 이맘때쯤이면 지지율이 90%대를 웃돌았다. 몰아치는 듯하던 개혁 드라이브나 환난의 위기의식 덕분만이 아니다. 여기에 새 대통령에게 따라붙는‘허니문 프리미엄’이 더해진 결과다.

지지자의 기대가 솟구치고, 반대자도 덕담을 건네고, 심지어 선거의 경쟁자까지 전도(前途)를 성원해줄 수밖에 없는 게 밀월 기간이다. 지지율이 90%가 못 되면 그게 비정상이다. 이 밀월 기간의 노 대통령 지지도가 70%선을 맴돌고 있다. 노 대통령과 정권의 핵심인사들은 왜 이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고작 40일 밖에 안 됐는데, 그런 걸 거론하는 진의와 저의가 뭐냐고 따질 일이 아니다.

대통령의 임기는 햇수로 5년, 달수로 60개월이다. 문제는 같은 기간이라도 임기 초와 임기 말은 시간의 값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선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취임 100일’이란 말이 생겨났다. 취임 후 100일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그 대통령의 성패를 가른다는 이야기다. 노 대통령은 이 금싸라기같은 100일 가운데 벌써 40일을 소비했다. 중간결산을 서둘러야 할 처지다. 중간결산의 포인트는 역시 두 가지다. 첫째는 왜 벌써 지루하다는 소리가 나오는가다. 둘째는 전임자가 다들 누렸던 ‘허니문 프리미엄’을 왜 노대통령은 누리지 못하는가다. 뭔가 이상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그걸 찾아내 수리하는 일이다. 그러려면‘새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라는 교과서로 돌아가야 한다. 신임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정권의 주제(主題)를 국민의 마음속에 심어주는 것이다. 이 일을 취임 100일 안에 해내야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정치적 본능이다. 국민이 속을 드러내놓지 않아도, 국민이 지금 절실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짚어내는 능력이다. 이 대목에서 국민의 우선순위와 대통령의 우선순위가 엇갈리면 대통령은 겉돌게 된다.

주제를 짚어냈다 해서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그 주제가 국민의 머리에 새겨질 때까지 대통령의 말과 행동의 초점을 오로지 거기 맞춰야 한다. 이게 마무리되면, 나머지는 반(半)자동으로 돌아간다. 주제에 열중하면 지지도도 오르고, 한눈 팔면 내리막이다. 취임 100일은 내내 위태위태하다. 이 시기의 가장 치명적 실수는 선거와 국정운영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는 사람이 있으니 이기는 사람도 나온다. 적과 동지가 갈릴 수밖에 없다. 모두가 승자가 되는 윈·윈 게임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이게 선거의 속성이다. 이런 이분법(二分法)이 취임 후까지 연장되면, 국정운영은 그날로 멱살잡이로 변한다.

‘허니문 프리미엄’이고 뭐고가 없다. 새 대통령에게‘우리끼리’, ‘뜻 맞는 사람끼리’라는 말을 절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면‘노 대통령 40일’의 수수께끼도 거반 풀린 셈이다. 국민의 86%가 경제가 나쁘다고, 76%가 IMF 사태 같은 게 다시 덮칠지 모른다고 걱정한다고 한다. 국정 현안의 우선순위가 북핵과 경제에서 경제와 북핵으로 바뀌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 마당에 대통령이 쏟아낸 그 많은 말 중에서 제일 자주 되풀이된 주제가 언론이고, 그 가운데서도 신문이다. 국민들에게서 코드가 맞지 않는다, 지루하다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한 것이다.

새 정부가 유행시킨 대표적인 말이 바로 이‘코드가 맞는…’이란 표현이다. ‘허니문 프리미엄’을 제발로 차버린 주범이 이 말에 담겨 있는 적과 동지의 이분법이다. 이제 처방을 내릴 때다. 노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국민더러 코드를 맞추라고 할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코드를 맞추고, ‘우리끼리’에서‘다함께’쪽으로 발걸음을 새로 내디뎌야 한다는 것이다. (姜天錫 ·논설주간)

이문열씨도 이러한 논리적 비약에 대해서 자유로울수 없다. 그가 그동안 정치적 성향을 보이면서 뱉어낸 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문열씨 스스로도 조선일보와 같은 엿가락 논리로 국민들에게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분명하다. 이 얼마나 추접스럽고 해괴한 상황 논리의 비약인가. 이념적 관점에서 맞지 않는 것은 철저히 몰아세우면서 맞는 것은 철저히 보호하려고 하는것도 정도껏 해야 한다. 그래서 이문열씨와 조선일보를 아직도 이념적 관점에서 똥과 된장도 구별못하는 구시대적 발상을 하고 있다고 조롱하는 것이다. 그런 엿쟁이 같은 논리로 국민을 무식하다고, 빨갱이라고 몰아세울 자격이라도 갖추었는가?

진중권 교수는 10년전, 조갑제씨와 조선일보를 위해서 이런 책을 썼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이문열씨도 스스로 글쟁이로서 글만 쓰길 진심으로 바란다. 지식이 변절하고 색깔을 가지게 될때 얼마나 추잡한것이 되는지를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가장 오만한 지식인은 자신이 가진 알량한 지식과 권위로 대중을 유린하는 것이다. 누군가 이런말을 했다. 서정주 시인의 친일행위는 작가로서 생존을 위한 피치 못할 행위 였다면 이문열씨의 해괴한 논리는 배부른 작가가 태생적 불만을 보상 받으려는 치졸한 자기 부정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