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이야기80

술취한 그림자. 가끔은 저녁에 산책을 한다. 미련스러울만큼 게으른 나에겐 커다란 운동이 되기도 하고 낮에는 볼 수 없는 거리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림자가 짙게 깔리고 지나가는 차들이 헤드라이트를 켜기 시작한다. 햇살아래 뚜렷했던 그림자는 어느새 가로등 불빛으로 희미한 윤곽을 유지한다. 겨울이 가고 있는 2009년의 한가로운 저녁이다. 시선 하나. 한 아저씨가 자전거를 끌고 간다.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금방 눈치를 챌 만큼 술에 취했다. 아직 어둠이 다 찾아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술에 흠뻑 젖었다. 더군다나 자전거까지 끌고 간다. 아저씨의 다리가 휘청거릴때 자전거도 함께 휘청거린다. 술취한 아저씨. 큰 소리로 뭔가를 외치며 걷는다. 이른 저녁에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그런데 이 아저씨 목소리가 참 낭낭하다. 가까이.. 2009. 2. 22.
이방인. 고향을 그리워 하는 것은, 아득한 풍경속에 그려진 익숙한 모습 때문이고 그 풍경속에 새겨진 사람 때문일 것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늘 이렇게 포근하고 넉넉한 감정을 안겨준다. 하지만 가끔은 주변의 익숙한 풍경에서도 알수 없는 낯설음을 느끼게 된다. 누군가는 그런 낯설음을 외로움이라고 했다. 그리고 가슴속 한켠에 담아둔 그리움이라고 했다. 외로움과 그리움. 풍경은 익숙하지만, 그 속에 사람이 사라지고 없을때가 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이방인인지도 모른다. 이방인 하나. 쌀쌀한 바람을 느끼며 가지런한 길을 걷는다. 길은 익숙하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낯설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람을 피해 유아용품을 파는 가게 옆 계단에 선다.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이놈의 담배 생각은 간절하다. 십수년전 군대에서.. 2009. 2. 19.
발자국. 희망을 기억하다. 늘 반복되는 시간이지만, 우리는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지난버린 시간과는 좀 다른 시간을 살고 싶은 소망을 담아 낸다.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고 부르고 꿈이라고 부른다. 해가 바뀔때 마다, 뭔가 달라져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면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고 알차고 보람있게 쓰겠노라고 다짐했었다. 학창시절에는 새로운 계획표와 일기장이 곧잘 등장 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좀 더 가지기 위해 욕심을 부려야 했다. 그것은 새해를 맞이 하며 없어서는 안되는, 아주 중요한 행사였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흘러 자신의 나약함에 괴로워 하고 년초에 새웠던 목표는 까맣게 잊어 버리곤 했다. 그러한 다짐은 늘 반복되었고 어느새 나이를 먹어 버렸다. 설날 연휴에 눈이 소복하게 내렸다. 눈이 덮.. 2009. 1. 31.
바보 형과 길 잃은 강아지 아마도 오랜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살아온 시간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시간의 흔적은 언제나 그렇듯이 잡힐듯 말듯 모호하다. 그 기억은 때맞춰 내리는 겨울비속에 비추어진 풍경만큼이나 흐리고 아련하다. 슈퍼마켓집 외아들. 어릴적 동네 슈퍼마켓을 하던 아저씨의 집 외아들이 있었다. 꽤나 넉넉한 풍채의 아저씨는 늦게 얻은 아들을 끔찍히 사랑했다. 나 같은 꼬맹이들은 그 아들을 형이라고 불렀다. 몇살 터울이 나진 않지만, 형은 우리들과는 달라 보였다. 마치 부잣집 외동아들처럼 근엄하고 얌전하며, 성숙해 보였다. 아니 무언가 우리들과는 다른 세상의 사람같이 보였다. 형의 눈빛은 다부지고 단호해 보였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이웃분들은 그 형을 보며 총기가 넘친다고 했다. 까까머리를 하고 이제 막 중.. 2008. 12. 18.